선물

약속도 없이 무작정 한 번 찾아 뵙겠다는 남도의 걸쭉한 사투리가 수화기에서 튀어 나왔다. 이미 두어 달 전 검토를 끝내 통보를 한 것으로 알고 있어 굳이 찾아 오실 필요없다고 했지만 올라온 길에 한 번 만나고 싶다며 서울 지리를 전혀 모르는 분들이 용케 물어 물어 찾아 왔다.

일을 하다 보면 이런 사람들이 많아 문전박대를 하곤 하는데 방문한 사람은 공무원들이라 내키지 않지만 자리를 마련했다. 30여분간 우리가 사업에 참여할 수 없는 이유를 조목조목 설명해 주었다. 처음엔 약간 무대포 스타일로 기선을 잡으려던 그들은 나의 친절한(?) 설명에 고개를 끄떡이고 지역특산품이라는 선물을 놓고 고맙다는 말을 남기고 자리를 일어섰다.

아내는 선물이 그 지역 대나무와 죽염을 원료로 한 비누라며 좋아한다. 아내에게 낮에 있었던 일을 설명하니 그렇게 먼 길을 찾아 온 사람들이었는데 도와 주면 안되냐고 묻는다. ‘천억이 넘는 투자사업인데’라고 웃어 받아 주었는데도 아내는 돌아서 가는 그들의 쳐진 어깨를 마치 본 것처럼 안쓰러워 한다. 불현듯 작별 인사를 나누고 낙담을 하며 발길을 돌리는 그들 중 한사람의 양복 윗저고리에 총총 내린 비듬이 떠오른다. 이렇게 받은 선물은 가슴이 아프다.

Friday, December 19th, 2008 10:23a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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