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가 신문을 보다 너무나 마음에 드는 글이 있다고 소소에게 읽어 보라고 권하더군요.
농사 짓고 글짓는 전우익의 새해 편지어떻게 살아야 하는 건지, 애들은 어떻게 키워야 할 지, 다시 한번 생각케 하는 글입니다.지난해엔 비가 많이 와서 어린 엄나무가 네 자(1백20cm)나 컸는데, 크는 게 눈에 보이지 않고 소리도 나지 않았습니다. 소리치고 요란한게 그다지 좋은 게 아닌 모양이지요.
난장판에서 생긴 결과는 난장판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하지만 이번 대통령선거 때는 음식점과 술집에서 그 요란스럽던 소리와 난장판이 사라지고 꼬리 물고 전국을 누비던 관광버스의 광란(狂亂)도 눈에 띄지 않았습니다. 정말 놀라운 변화라 여깁니다. 민족의 운명을 좌우하는 중요한 행사는 그 과정 자체가 차분하고 엄숙해야 할 터입니다.
부끄러운 역사와 현실을 하나 하나 고쳐가는 민족은 자신을 정화(淨化)하고 자신감을 갖고 그들의 터전을 다져나갈 수 있다고 믿습니다. 우리 다시는 그 치욕스런 역사와 현장을 되풀이 하지말고 떳떳하고 당당하게 살아갑시다.
쓰러지지 않는 걸 자랑하기보다 쓰러졌다 다시 일어서는 게 더 자랑스러울지 모릅니다. 우리는 오랫동안 가난하게 살았지만 치사하게 살진 않았습니다. 가난을 벗어 던지려고 안간힘 써 왔습니다. 그런데 먹고 입는 문제가 해결되자 흥청망청 쪽으로 달음질 치는 것 같아요. 여기서 우리 한번 멈춰서서 되돌아 봅시다. 우리 어머니.할머니들은 자신이 굶고 아들.손자들을 굶기면서 살면서도 알뜰살뜰 아끼고 아끼는 살림살이를 해왔습니다.
우리 지금 너무 많이 갖고서도 더 가지려고 진을 다 빼며 사는 것 같아요. 사람이 살아가는데 과연 그렇게 많은 게 필요할까요. 밤 하늘에 뜬 저 달이 차면 기울듯이 올해부턴 우리 한번 조금씩 줄여가면서 편하게 살아봅시다. 가진 삶과 함께 없이 사는 법도 배워봅시다. 가지고 사는 것 누가 못해요. 없이도 살 수 있는 그런 삶도 함께 살아 보자구요.
모두 살 뺀다고 야단인데 군살과 함께 지나친 욕심도 빼 봅시다. 살 빼면 몸 가벼워지듯 욕심 빼면 마음 가벼워지고 홀가분해 질 것 같아요. 이 세상에서 가장 무거운 짐이 욕심 아닐까요.
욕심 빼고 나면 있던 경쟁자나 이웃이 친구로 변해요. 천금 주고 살 수 없는 게 친구입니다. 돈으로 사귀는 건 돈 떨어지면 끝나지만 마음으로 사귀면 서로의 마음이 부자가 됩니다. 새해에는 우리 한번 마음의 부자 되어 신나게 살아봅시다. 마음이야 푹푹 막 써도 쓰면 쓸수록 솟아나는 법입니다.
아이들 교육, 그거 교육 아니고 들볶는 거 아이껴(아닙니까). 그들을 믿고 바라봅시다. 어머님들 떳떳하고 당당하시게 알뜰살뜰 살아가는 모습 그게 가장 중요한 교육 같은데요. 아이들한테 공부, 공부 하지 마시고 때때로 어머님들께서 공부 하이소. 나무를 키우는데(키우긴 뭘 키워요. 나무는 스스로 크는데 우리는 나무를 망치면서 키운다고 착각해요) 키운답시고 가지치고 휘어잡아 볼썽 사나운 나무 만들고 거름과 비료 많이 줘서 약하게 키워 말라죽게하는 꼴 많이 봅니다.
자라는대로 그냥 둬요. 자연에 가까운 것이 가장 좋습니다. 자연이란 자유입니다. 왜들 아버지.엄마 말 잘듣는 아이 만들려 듭니까. 교육이란 순종과 반항을 함께 가르쳐야 합니다.
밤이 있고 낮이 있듯이 말 잘 듣고 고분고분한 아이 만들지마소. 살만 찌우려 들지 마시고 튼튼한 뼈 만드는데 거들진 못하더라고 훼방놓지 말아요. 쩨쩨하고 눈치 살피는 아이 만들지 말고. 말썽꾸러기 많은 세상이 활기차고 생명이 솟구치는 믿음직스러운 세상 같은데요. 효순이와 미선일 애닯아하는 촛불모임과 거리행진이 찬 하늘 아래 이어지고 있습니다. 문득 대통령이 노벨평화상을 받았다고 방방곡곡에 큰 현수막 걸려 있던 모습이 떠오릅니다. 나라 이름 대한민국 앞에 붙은 대(大)자에 얽매이는 겁니까. 작아도 좋으니 우리끼리, 때로 치고받더라도 오손도손 살아가는 소한민국에서 살고 싶습니다.
우리는 약하지만 떳떳해야 합니다. 떳떳한 삶에는 한때의 고통은 따르지만 치사한 삶에는 평생의 고통이 따를지 모를 일입니다. 새해에는 당당한 우리를 만나 서로 웃음을 나누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