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2월 25일 18:35분
진주행 마지막 비행기를 탔다. 내일 오후에 볼 일이 있지만 만약의 사태를 대비하여 하루 전날 내려간다. 사천 공항까지 50여분의 짧은 비행이었지만 평생 기억에 남을 것 같다. 업무상 수십번 비행기를 타보았어도 어제 같은 짜릿한(?) 공포는 처음 느꼈다. 도착지에 거의 다 도착했다는 기장의 멘트가 있고 나서 얼마 후 갑자기 나타난 이상기류 때문에 비행기가 요동을 치기 시작했다.
흔들리는 것은 그렇다치고 놀이공원 바이킹같은 느낌을 주는 급강하. 의자에서 엉덩이가 잠시 떨어졌다. 뒷쪽에서 여자들의 비명소리가 들린다. "아~~~악"
'이상기류를 만나 비행기가 추락한 적이 있나?' '하나님 아버지 살려 주세요.' 짧은 시간 동안에 많은 생각을 한 것 같다. 그리고 심호흡을 크게 몇번하고 창밖을 보며 마음을 가라 앉혔다.
사천 공항에 무사히 안착하고 기장이 짧게 멘트를 날린다. 이상 기류때문에 불편하게 해드려 죄송하다고... 그게 어디 기장 탓이고 항공사 탓이랴? 위대하신 자연님의 심술인 것을...
2. 2월 25일 19:50분
사천공항에서 진주시까지는 거리가 제법된다. 초행길이라 안전하게 택시를 탔다. 출장이라 영수증을 발급하는 택시를 타야하기 때문에 승차전에 발급여부를 확인했다. 내일 업무가 있는 곳은 진주 외곽이라 잠자리 마련이 불편할 것 같아 진주시내 번화가로 행선지를 잡고 택시 운전사 아저씨에게 모든 것을 부탁했다.
시내에 다다르자 아저씨는 신호등 정차시때마다 실내등을 켜고 포스트잇에 뭔가를 긁적긁적 거리신다. 아마도 내일 업무를 마치고 공항가는편에도 이용해 달라고 연락처를 적으시는 것 같다. 큰 다리가 나오자 아저씨는 차를 세운다. 승차전에 약속한대로 15,000원(메터기를 꺽었으면 반값 정도 거리인데...) 주고 영수증을 요청하자 아저씨는 포스트잇을 주신다. 운전중 적으신 것이 바로 이 영수증이었다.
영수증
일금 일만오천원정
15,000
상기금액을 택시요금으로 영수함.
2004.2.25
정OO
"아저씨! 이것으로는 영수증 처리가 안되는데요?"
"마~ 괴안습니더. 다 그리 하는데예? 마~ 안되면 이리 줘 보이소"
그리고 포스트잇을 가져 가시더니 여백에 뭔가를 하나 더 적으신다.
경남00마 11XX호
그냥 웃고 말았다. '그건 그렇고 주변에 숙소가 하나도 없는데 왜 이런 다리앞에서 세워 주지?'
"여기가예~ 남강이라는 곳입니다. 진주에서 제일 유명한 곳이지예. 이 다리 건너에 여관들 보이지예. 거기서 주무시면 됩니더. 시원한 강바람 맞으시면서 다리를 건너가 보이소. 좋습니더."
다리를 건너면 교통이 혼잡해 일부러 나를 이곳에 내려 줄 수도 있고, 아니면 진주 초행길인 나에게 진주의 명소를 소개시켜 주며 일부러 야밤에 산책의 여유까지 주신 것인지 아저씨의 진의를 알 수는 없지만 후자라 생각하며 진주 남강을 가로 지르는 다리를 무거운 가방을 들고 걸었다.
2월 26일 오전 진주시외버스터미널 건너편 PC방에서 아침식사 대용으로 귤을 까먹으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