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끔씩 아이들이 "아빠! 이건 무슨 나무예요?"라고 묻곤 한다. 도심속에서 흔히 접하는 나무들은 그 종류들이 많지 않으므로 선뜻 답을 해주지만, 한적한 야외나 산으로 나가면 나도 아이들과 마찬가지로 나무에 팻말이 매달려 있지 않으면 아는 나무들이 거의 없다. 흔히 접하는 나무라는 사물에 대해 내가 알고 있는 것은 얼마나 될까?
어린 시절 기억속에 남아 있는 커다란 고목이 어떤 나무였는지 기억을 떠올려보지만 내 머리속에는 몇 백년이라는 나무의 나이만 남아 있다. 아파트 단지내 도로 가로수가 어떤 나무인지 방금 전에 확인하여 은행나무라는 것을 알았지 평소에는 관심도 없이 몇 년을 같이 살아 왔다. 은행나무의 잎모양새와 열매는 알고 있지만 껍질이 어떻게 생겼는지는 다시 나가서 확인을 해야 한다. 이렇게 이 나이를 먹도록 '나무'라는, 인간에게 없어서는 안 될 고마운 친구에 대해 너무나도 무관심으로 살아 왔다.
여기 한 인문학자가 있다. 그는 나무를 세는 사람이다. 학교 교정에 어떤 나무가 있으며 그 나무들이 각각 몇 그루인지 갯수까지 세며 제자들에게도 이를 과제로 내는 사람이다. 왜 나무를 세냐고요?
나무를 세고 나면 그 이유를 알게 될 것이며, 나무를 세고 나면 천지가 개벽할 것이다. (11p)저자는 이렇게 다소 황당한 답을 하지만 결론적으로는 나무를 세는 것도 '공부'라는 것이며, 이를 통해 성리학에서 말하는 격물치지를 실천토록 하는 것이다.
저자는 우리의 삶과 역사에 등장하는 몇 그루의 나무들을 소개하는데, 몇 그루의 나무만을 소개하는 것이 나무에 대한 암묵적 차별이지만 나무에게 다가가기 위한 부득이한 접근법이라고 나무들에게 정중히 양해를 구하며 글을 시작한다.
나는 대한민국을 상징하는 나무가 왜 박달나무가 아니라 무궁화나무인지 의아해하는 사람이다. 박달나무가 우리민족의 나무여야 하는 이유는 이 나무가 우리의 정체성을 담보하고 있는 신화의 나무이고, 무궁화보다 물질적 정신적으로 다양한 가치를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더욱이 내가 이 나무를 우리의 나무로 생각하는 이유는 이 나무의 뜻이 '단결'이기 때문이다. (42p)나무를 세어 본 적이 있나요?일년 내내 단풍인 나무는 이미 단풍이 아니듯, 평생 똑같은 모습으로 사는 사람도 죽어 있는 것과 같다. 자기만의 색깔을 갖기 위해서는 시간이 필요하다. 아름다운 단풍이 일 년 동안의 성실한 삶의 결정체이듯, 사람도 성실한 삶을 산 뒤에야 변화할 수 있다. (195p)
사람이 나이를 먹으면서 피부가 거칠어지는 것은 아마도 욕심으로 속을 채우기 때문일 것이다. (248p)
내가 나무를 세는 것은 나무의 삶을 통해 인간을 바로 보기 위해서이다. 그래서 나무를 세는 나의 행위는 나무가 아니라 나를 세는 것이고, 아름다운 세상에 대한 갈구이다. (253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