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살고 있는 아파트는 약 2000세대 대규모 단지이다.
단지내 상가는 정문과 후문쪽으로 나누어져 있는데 대다수 사람들의 생활권이 정문쪽과 연계되어 있어 그 쪽 상가는 날로 번창하고 있다. 반면 후문쪽 상가는 좌석버스를 이용해 출퇴근하는 사람과 근처 세네개 동의 주민들만 이용할 뿐 한산하기 그지없다.
입주하는 가게들마다 몇 달을 못버티고 월세만 까먹고 바로 폐업(?) 정리를 하고 나간다. 그나마 아직까지 버티고 있는 것은 치킨집과 구멍가게 정도. 속된 말로 ‘죽은 상권’이다. 가끔 아내가 "후문쪽 상가는 죽은 상권이라 월세도 싼데 부업으로 장사나 한 번 해볼까요? 아이템만 잘 고르면 성공할 것 같은데" 라며 나의 의향을 묻곤 하면, "뭐 잘될게 있겠어? 들어 오는 족족 망하고, 아파트 상가라 취급할 수 있는 아이템도 한정되어 있는데" 라고 죽은 상권임을 단정지어 대답을 한다. 그런데 그 죽은 상권에 요즘 누구도 예상치 못하던 업종으로 장사 잘되는 가게 하나가 들어섰다.
어느 아파트 상가나 치킨집이 있다. 아이들 어른들 모두 좋아하는 전 국민의 간식, 프라이드 치킨. 출출할 때 아이들하고 배달 주문해서 먹고 더운 여름이면 시원한 생맥주에 안주삼아 먹는 가장 흔한 것 중 하나가 치킨일 것이다. 죽은 상권이지만 그나마 명목을 유지하던 치킨집에 강력한 라이벌이 등장하여 요즘 호황을 누리고 있으니, 바로 '실내 포장마차'이다.
그동안 안주감으로 치킨만을 울며 먹고 버티던 주당들이 '실내 포장마차'의 정감 어린 메뉴에 너도나도 찾고 있다. 새벽 두세시에도 잠못 이루는 부부들이 들러 소주 한잔씩 기울인다고 한다. 우리집도 일주일에 두어번은 꼭 찾는다. 아이들은 맛깔나는 국수로 한끼 해결을 하고 나와 아내는 아이들을 재워 놓고 소주 한잔을 위해 찾는다. 맛나는 음식도 좋지만 50대 후반 중년 부부의 친절함이 더욱 마음에 든다.
치킨집에서는 소주와 어울리지 않는 안주들만 있어 생맥주를 안주 없이 주문하는 경우가 있었고 그럴 때마다 주인 아주머니의 차가운 눈치를 받아 맘편하게 술 한잔 못걸친 경우도 있었는데, 포장마차에선 부담없는 안주거리, 늦은 밤까지 즐겁게 말동무를 해주는 주인 부부 그리고 안주가 모자라면 공짜로 보너스 안주까지 내주는 선심까지 있어 아내와 즐거운 대작을 나눈다.
메마른 콘크리트 건물 속 포장마차에서 술을 만나고 사람을 만나고 정을 만난다.
Comments (1)
소소님과 소주 한잔 기울이던 때가 언제이던가..--a
겨울모임 한번 해보는것이 어떨까요?..
1월 즈음 해서...^^
Posted by MDD | December 7, 2004 12:54 P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