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祺와碁

전신 조훈현씨와 관련된 기사를 읽고 기도(棋道)와 관련된 글을 찾아 보다 발견한 그의 에세이 중에서

바둑판은 우주다.
바둑돌은 우주의 현상이다.
바둑 두는 법은 대자연의 법칙이다.
바둑을 우주의 축소판으로 묘사할 때 흔히 우리는 이런 식으로 표현한다. 스케일의 크기를 논할 게 아니라 판과 돌의 차이가 분명히 존재하다는 것을 우리는 안다. 쉽게 표현하자면 판은 자연이고 돌은 인간일 수 있고, 판이 전쟁터라면 돌은 군사일 것이다. 판은 링이고 돌은 복서인 것이다. 판은 늘 그대로이지만 돌은 의지에 따라 무수히 변화할 수 있다.

‘碁’는 우주를 능동적으로 활용하고 움직이려는 인간의 의지가 녹아있는 멋진 글자이다.
‘棋’ 역시 우주 그대로를 압축해 넉넉한 질량을 보유한 글자라고 할 수 있다.

우리 전통의 순장바둑은 미리 화점에 돌을 깔고 둔다. 현대의 프로기사들 입장에서는 포석의 운신이 좁아지기에 그리 환영할 수 없는 룰이지만 선조들이 왜 그런 방식을 취했는지 생각해 볼 필요도 있다. 돌들을 미리 자기 자리에 배치한다는 것은 장기와 흡사하다. 양 쪽 모두 동등한 군사를 동등한 자리에 배치하고 병법과 지략을 동원해 전투를 치르는 것. 그래서 현대바둑보다 훨씬 전투적이라지만 내 생각은 좀 다르다. 순장바둑 역시 돌의 효율보다 판을 중시하는 우리 선조들의 의식이 만들어 낸 소산이 아닐까?

'祺와碁'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