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950년대 '유인원 세계의 세잔'이라는 별명을 얻었던 침팬지가 그린 추상화 3점이 영국 경매소에서 1만2천파운드(2천200만원)에 낙찰됐다고 영국 BBC방송 인터넷판이 20일 보도했다. [침팬지가 그린 그림 2천만원에 낙찰]시리가 그린 그림을 보고 추상 표현주의 대가인 제롬 위트킨 교수는 "정서적으로 매우 아름답다. 명쾌하고 긍정적이며 긴장감이 있고 절박한 에너지가 넘치는... 믿을 수 없을 정도다. 이 그림은 감정의 본질을 잘 파악하고 있다." 하고 감탄을 했다.
시리는 체중이 4톤인 인도 코끼리였다. (시간이 없어 쓰다 만 글을 계속 적는다.) 물론 위트킨 교수도 시리가 코끼리라는 사실을 모르고 평을 한 것이다. 예술은 언어와 함께 인간과 동물을 구별짓게 하는 고유한 특질로 알고 있는데 동물도 예술 행위를 할 수 있다는 말인가? 최근에 읽고 있는 책에 이에 대한 재미있는 답이 있어 정리한다.
제레드 다이아몬드는 그의 저서 '제3의 침팬지'에서 이에 대해 다음과 같이 이야기한다.
예술이라고 규정할 수 있는 기준은 일반적으로 3가지 원칙을 토대로 한다.
1. 인간의 예술은 어떤 유용성이 없다.
2. 단지 심미적인 기쁨이나 즐거움을 위해 행해진다.
3. 유전자가 아니라 학습에 의해 전달된다.
그러나 동물 중에 '바우어'라는 새는 암컷을 유혹하기 위해 근사한 예술작품인 오두막(정자)을 짓고, 암컷은 오두막의 멋짐을 기준으로 짝짓기를 할 수컷을 결정하는데 이 과정이 유전이 아닌 학습이라는 사실을 밝힌다. 따라서 세번째 기준은 의미가 없고 두번째 기준은 동물에게 확인할 방법이 없으므로 논외로 한다. 마지막 기준인 예술의 무용성은 분명 인간만의 예술특성으로 보인다. 바우어 새의 예술행위는 암컷과의 짝짓기라는 성적기능을 가지고 있으므로 인간의 기준에서 보면 예술행위라 할 수 없다고 볼 수 있다. 정말로 오스카 와일드의 말처럼 모든 예술은 무용한가? 저자는 예술작품을 통해 성적이익과 사회적 지위 및 부 등의 간접이익으로 생존과 유전자 확산에 도움을 주는 인간의 예술 행위에 대해서도 언급을 하며 첫번째 기준도 인간만이 가지고 있는 예술의 특질이라 할 수 없다고 주장한다.
3가지 기준에 대한 반박을 정리한 후 저자는 인간의 예술이 다른 동물에게서는 볼 수 없는 특유한 것인가? 왜 인간만이 예술을 하나? 하는 의문에 '여유'라는 다소 황당한 답을 내놓는다. 동물원의 침팬지는 그림을 그리는데 야생의 침팬지가 안하는 이유는 먹을 것을 찾고 살아 남기 위해 적을 쫓아내는데 전력투구하기 때문에 그림을 그릴 여유가 없다는 것이다. 즉, 음식물 획득 기술이 발달하고 생존 문제 등을 극복한 동물들은 여유가 생기고 나머지 시간을 이웃보다 우세해지려는 좀 더 사치스러운 목적에 사용하며 그 중 하나의 행위가 인간이라는 동물이 이름진 '예술'이라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