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계레 신기섭 기자의 글을 보고 고른 책. 언론의 역할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해 보게 한다. 진실하고 공정한 균형잡힌 보도만을 하는 줄 알았던 외국의 진보 언론(특히, 이 책에서는 가디언이 많이 언급된다)들의 잘못된 보도 실상을 소개한다.
촘스키, 누가 무엇으로 세상을 지배하는가를 보면 이런 내용이 나온다.
선생님의 말씀에 따르면, 지식인의 역할은 진실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선생님은 진실을 무엇이라 정의하십니까?
이 책을 보십시오. 이 책은 지금 의자 위에 있습니다. 따라서 이 책은 의자 위에 있다고 말하는 것이 진실입니다. 아주 간단하지 않습니까? 현실을 있는 그대로 말하는 것이 진실입니다. 진실된 말은 꾸밀 필요가 없습니다. 꾸민다는 것은 완전히 다른 문제입니다. 결국 현실을 사실대로 설명할 때 우리 모두가 진실에 가까이 다가설 수 있습니다.
진실(있는 사실)을 그대로 전달하는 역할을 해야 하는 언론에는 어떤 한계가 있을까?
'언론과 지식인은 '조작된 동의(manufactoring consent)'의 배달부다'라는 촘스키 말처럼 왜곡된 진실 배달의 한 축을 이루는 언론인들에 대해 미디어렌즈는 그들의 태생적 한계를 지적한다.
촘스키와 에드워드 허먼의 말을 빌려 언급한 내용은 '미디어가 제한된 범위와 한계내에서만 활동하고 무비판적으로 엘리트 정보원(정부나 대기업)에 의존하면서 엘리트들의 이익에 부합하는 선전활동에 참여해온 것은 미디어기업이 철저하게 시장경제시스템에 의존하는 구조적 문제점과 지배적 이데롤로기에 의해 통제되기 때문'이라고 밝힌다.
수익의 75%를 광고에 의존하는 영국의 주류언론들이 고객(대기업)의 물질적 압력에 얼마나 자유로울 수 있을까? 미디어렌즈도 이런 언론계의 기업구조를 알기 때문에 문제제기를 통해 현재의 미디어시스템이 얼마나 제한되어 있고 편협한지를 독자에게 알리는 것이지 환경파괴를 일삼는 기업의 광고를 싣는 것을 거부하는 등 체제내의 자생적 혁명을 바라는 것은 아니다. 보다 많은 독자들이 문제점을 자각하고 그런 바탕에서 기존의 주류언론을 어느정도 통제하거나 대체할 수 있는 민주적이고 대안적인 미디어가 탄생하기를 희망하는 것이다. 그런 예 중 하나로 온라인 저널 오마이뉴스를 한 예로 들고 있다.
우리의 목표는 독자들에게 선의를 가진 기자들도 미디어기업의 정신병적이고 가장 기본적인 우선순위에 얼마나 취약할 수 있는지를 지적하는 것이다. 우리는 변화는 정확히 대중들의 손에 달려 있는 것이지, 기자들이 할 수 있는 일이 별로 없다는 사실을 사람들이 깨닫도록 노력하고 있다. 민주적이고 자유의지적인 변화가 '위로부터 일어날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 가디언이나 인디펜던트와 같은 진보적인 신문들조차 - 순진한 것이다. 진보는 변화에 대한 역동적인 대중들의 요구의 결과로 성취하는 것이다. (p345)
미디어렌즈가 이야기하는 궁극적인 대안 미디어는 '동정적 미디어'이다.
이기적이고 탐욕적인 동기는 이기적인 목표를 달성하는데 방해가 되는 생각과 사실을 걸러냄으로써 이성을 왜곡하는 경향이 있다. 반면에 다른 사람의 고통을 덜어주고자 하는 진지한 욕망은 이성적으로 문제의 원인과 현실적인 해법을 찾는 것에 커다란 도움이 된다. (p346)
정치권력은 우리를 소극적이고 순종적이며 무지한 존재로 만들고자 하며 기업들은 우리를 삶의 피상적인 것, 소비에 몰두하게금 한다. 이런 환경에서 우리의 삶은 타인의 고통과 고난에 대해서 생각하지 않고 경제적으로 윤택한 삶을 누리는 이기적인 목표에만 맞추어져 있다. '다른 사람의 고통을 덜어주고자 하는 진지한 욕망'이 없으면 미국의 폭격으로 죽어가는 타자들에 대한 관심보다 대통령의 섹스추문이 우리의 주된 관심사가 되며 언론들 또한 우리의 욕구에 맞는 맞춤방송만 할 것이다. 우리나 언론 모두, 타인의 고통은 타인의 고통일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