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보전진
중국 자금성내 화장실에서 본 문구
문명의 대도약을 위해 꼬추든 남성들이여! 한 발자국 더 다가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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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자금성내 화장실에서 본 문구
문명의 대도약을 위해 꼬추든 남성들이여! 한 발자국 더 다가서라.
지난 금요일부터 일요일까지 2박 3일 여정으로 북경에 다녀 왔다. 몇가지 느낀점은,
1. 짝퉁시장 : 일행이 똑같은 물건을 전부 각기 다른 가격에 살 수 있는 곳. 나중에 사는 사람이 절대 유리하다. 국내 인터넷 쇼핑몰에서 중국산을 들여다가 짝퉁이라 고백은 하지만 몇 만원씩에 파는 것들도 얼마나 폭리를 취하는지 확인했다.
네고시에이터의 자질 확인을 위해 시험삼아 루이비통 장지갑을 구입했는데 흥정과정에서 실갱이가 별로 없었던 것으로 보아 돈을 많이 준 것 같다는 느낌이 든다. 먼저 산 친구는 10,000원, 나는 6,500원을 주었는데 도대체 이 물건의 원가는 얼마란 말인가?
지구 온난화에 대한 경고를 심각하게 받아 들이는 사람이 주위엔 아무도 없다. 나부터도 관심 밖. 하지만 세계 곳곳에선 지구 온난화로 인한 영향으로 문제들이 하나 둘씩 발생하고 있다.
슈피겔지에 실린 Prawns in the Rice Field라는 포토 에세이는 시사하는 바가 크다. 해수면 상승으로 당장 먹을 물이 부족해지고 생태환경이 변화하고 있다. 어제까지도 농사를 짓던 사람들은 이젠 새우를 키우며 생활하고 있다. 기후 변화로 생활양식 자체가 완전히 바뀌게 된 것이다.
Munshiganj, Bangladesh, is one such place. In the midst of a delta surrounded by rising seawater, the farmers in the Munshiganj district are seeing their livelihood die before them. Saltwater seeps into the groundwater, drinking water is growing scarce, rice paddies are dying out, and shrimp farming has become the new major industry. [Images of Villages Adjusting to Climate Change]
Manhattan에 물이 차오르는 날까지 기다리기엔 희생이 너무 크다.
'25 / 5 = 14' 혹은 ''7 x 13 = 28' 라는 괴상망칙한 증명을 예전에도 어디서 본 것 같은데 그 뿌리가 영화인가 보다.
'영화 속의 수학(Mathematics in Movies)'이라는 싸이트에는 수학과 관련된 29개의 영화 단편들이 있는데 이 중에서 앞서 언급한 증명들을 볼 수 있다. 1940년대 영화에 이런 재미난 아이디어들이 있었다는 것에 잠시 놀랬다.
(via J-Walk Blog)
'아줌마의 궤변'을 믿는 셈 치고 선물했더니 이런 문자 메세지가 왔다.
자기야! 정말 눈이 시원하네♥
미국, 리베리아 그리고 미얀마(버마), 세 국가간에 연결을 맺을 수 있는 것이 있는데 아직 metric system을 공식적으로 사용하고 있지 않다는 것이다. 누가 끝까지 갈까?
(via Dark Roasted Blend)
아들놈이 어버이날을 맞이하여 정성스럽게(?) 만든 케이크
제주도 맛집 몇 군데
여담 하나. 출장 중 새로 온 여직원과 전화통화 중에서
부장님! 시키신 문서 타이핑 쳐서 메일로 보내려는데 자꾸 에러가 나요. 혹시 부장님 출장 중이시라 컴퓨터를 꺼놓아서 그런거 아닌가요?
강아질 키울바에야 셋째를 보겠다던 아내가 결국 아이들 성화에 지고 말았다. 오늘 새벽 인천 행복한 유기견세상에서 입양해 온 '슈가'의 가슴 아픈 내용을 보면
슈나우져 여아 슈가입니다. 5~6년으로 추정되며 5.6kg나갑니다. 주인이 비닐하우스에 덮어진채로 방치하고 가끔 생각나면 한번씩 잔반을 갔다줬다고 합니다. 그리고 짖는다고 엄청 매맞으면서 살았다네요. 보다 못한 주민이 가끔씩 사료 챙겨주는것 먹고 살았대요.
밝은 세상에서 맘껏 뛰어 놀아라.
(사진출처 : 행복한 유기견세상)
문자 대화 중 왜그러니 신공을 펼치는 아내
자기야! 오늘 부부의 날이란다 몰랐지~몰랐는데 뭐 해야 되나?
그걸 나한테 물어보면 어쩌란거니
이런 말을 해줄 수 있는 아버지가 되어야겠다.
줏대를 버린 뇌동은 그 당사자에게만이 아니라 공동체에도 크게 해롭다. 그러나 줏대를 지닌다는 것은 독선적이 된다는 것과 크게 다르다. 줏대를 지니되, 진리는 늘 여러 겹이라는 사실도 잊지 마라. [성년의 문턱에 선 아들에게]
덧붙임) '스크랩문화에 대한 단상'이라는 글의 댓글에 아거님이 이 글의 원본을 알려줘 링크를 추가한다.
직장 생활을 하면서 '갑과 을'의 관계로 만나야만 하는 사람들이 많다. 나이가 들면서 점점 갑의 위치에서 만나는 사람들의 수도 늘어나지만 아직까지는 내가 을의 위치에서 만나야 하는 사람들이 많다. 업무관계로 갑과 을의 관계에서 초면인 사람을 만나 이야기를 나눈다는 것이 그리 쉽지만한 일은 아닌데 그 상대가 갑인 경우는 상당한 스트레스를 받는다. 특히 말 주변도 없고 내성적인 사람인 경우는 갑이라는 사람을 만나는 것에 대한 스트레스로 사람을 만나는 업무를 그만두고 다른 부서로 이동을 하는 경우도 종종 있다.
어느 갑을 만났다.
나이는 나보다 10년 연상이었고 몇 번 인사는 나누었지만 사석에서 만난 적은 한 번도 없었다. 저녁식사 겸 반주를 하는 자리를 마련했는데, '혈연, 지연 그리고 학연 어느 것 하나 연결이 되는 것이 없는 사람하고 무슨 얘기를 해야 하나?'로 나는 상당한 스트레스를 받고 있었다. 그러나 의외로 분위기가 괜찮았다. 나이도 지긋하시고 지위도 있으신 분이 서빙을 하는 아가씨에게 우스개 소리를 건내고 웃고, 마치 그 자리를 준비한 사람처럼 분위기를 잡았다.
둘이서 이런 저런 얘기를 하며 2시간 가까운 시간을 보냈다. 자리를 마칠 즈음 '부담없게 대해 주셔서 감사하다'고 인사를 했더니 이런 말씀을 하셨다.
"자네 얼마나 신경쓰였겠나? 그럴 것 같아 내가 먼저 분위기 좀 살렸네"
아가씨하고 농담을 하는 것도 나를 안심시키기 위한 의도된 행동이었다는 것을 알고 한 번 더 고맙다는 인사를 정중히 드렸다. '접대를 받는 것에 대해 산전수전 다 겪으신 분이라 이런 여유가 있겠구나' 생각도 들었지만, 돌이켜 보건데 갑으로서의 이런 여유는 흔치 않았다.
고수에게서 뭔가 한 수 배웠다는 느낌이 들었다.
토론 혹은 논의를 승패로 연결짓는 것만큼 어리석은 일은 없다. 이성적 혹은 논리적 반박이 명백히 우위시되더라도 어떤 사항에 대해서는 '너도 옳고 나도 옳다'는 입장을 견지해야 할 때가 있다. 내가 그가 아니기에, 반박의 논리정연에 빈틈이 없더라도 우위는 없다.
아는 동생의 글을 보고 나도 정리를 해본다.
가장 재미있었던 아르바이트 : DJ
입시를 마친 그 해 겨울 돈암동 나이트가든이라는 곳에서 DJ를 했었다. 메인 DJ가 저녁때는 부업으로 포장마차를 해 19:00 이후 시간을 했는데 보수는 담배 한갑에 차비 정도만 받았지만 내가 좋아하는 음악을 맘껏 들을 수 있어 즐겁게 일을 한 기억이 난다.
어느 화창한 토요일, 메인 DJ 형이 하던 오후시간 때에 판을 돌린 적이 있었는데, 매일 밤마다 처지는 음악만 틀어 좀 활기찬 음악을 선곡해 30여분 분위기를 냈더니 어떤 여자가 다가와 '여기가 무슨 고고장이냐?'며 거칠게 항의했던 에피소드도 있었다.
가장 힘들었던 아르바이트 : 잡부
군대간다고 휴학하고 친구와 같이 빌라를 짓는 공사현장에서 잡부로 일한 적이 있었는데, 3일 일하고 그만두었다. 2만원 정도 받았던 것 같은데 몸져 누워 아마도 약값이 더 들어 갔으리라.
무참히 짤린 아르바이트 : 학원기도
친구 작은 아버지가 운영하는 학원의 기도를 대학교 1학년 겨울방학때 한 달 정도 했었다. 업소 기도가 아닌 학원 기도가 하는 일은 수강증 검사 및 칠판 청소등의 잡일. 다만 원하는 과목을 맘껏 들을 수 있어 한 일이었다.
한 달 정도 열심히(?) 했는데 어느날 학원 관계자가 저녁을 먹자며 중국집에 데리고 가더니 맛나는 것을 잔뜩 사주며 내일부터 집에서 쉬라는 권고사직을 하길래 아무 말 않고 받아 들였다.
가장 편했던 아르바이트 : 과외교사
돈도 제법 되고 가장 편했던 것 같다. 학교에서 대낮부터 술을 먹을때가 종종 있었는데 공부 가르치는 날하고 겹칠 때가 가장 불편했다.
정리하고 보니 몇 개 되지도 않는데 괜히 기록했나 싶다. 하지만 나름대로 이유는 블로그에 대해 아직 초보인 은제아빠에게 트랙백이 뭔지 알리고자 함이므로 그냥 넘어가자.
자신과의 대화를 해 본 적이 그 언제였던가?
일기를 쓰지 않게 되면서, 우린 검열이 없는 글쓰기를 잃어버렸다. 내면과의 대화를 할 기회, 혹은 자기의 시간을 정직하게 돌아볼 기회를 잃어버렸다. 일기를 쓰지 않음으로써, 깊이 있는 반성을 생략하기 시작했다는 얘기도 된다. 일기는 존재하는 일의 의미와 살아가는 일의 문제들에 관해 스스로에게 꾸준히 질문하는 행위이기도 하다. 우린 단순히 일기를 쓰지 않게된 것이 아니라, 자기의 내면에 치열하게 접근하는 루트를 잃어버렸다. 블로그가 그것을 대신할 수 있는가. 일기가 드러내던 진실들은, 지금 어디 가 있는가. [블로그 글이 일기가 될 수 없는 이유]
멋진 황혼을 배경으로 날아 오르는 로켓들. 이런 아이러니가 있을까?
(Link : The Cellar)
1주전 우리 집으로 입양된 유기견 슈가가 잘 지내고 있다.
환경변화 탓으로 아직도 설사를 하지만 애들의 지극정성과 약물치료를 받으면서 점차 나아지고 있다. 유기견을 키운다고 주위 사람에게 말했더니 '병력이 있을지도 모르고 성격에도 문제가 있지 않겠느냐'는 우려로 '정상적으로 자란 강아지를 입양하지 왜 그런 강아질 데려다 키우느냐'고 의아해했다.
어제 5월27일은 타임지 선정 20세기 가장 영향력있는 100인 중 한 명이며 살충제의 남용 및 오용으로 인한 환경파괴를 고발한 명저 '침묵의 봄'의 저자인 고 레이첼 카슨(Rachel Carson) 여사의 100번째 생일날이었다.
링크한 글에서도 알 수 있듯이 일부 사람들은 레이첼 카슨 여사때문에 DDT 사용이 제한되고 결과적으로 매년 수백만명의 사람들이 모기가 옮기는 말라리아로 부터 고통을 받고 있는 사실을 거론하며 '그녀가 틀렸다(Rachel was wrong)'고 그녀의 업적에 대해 재조명을 하고 있다. 또한, 올 해 100주년을 맞이하여 그녀의 업적을 기리고자 상정된 결의안에 대해서도 위와 같은 이유를 들어 한 의원이 거부의사를 표명하고 있어 결론을 짓지 못하고 있다고 한다.
과연 그녀가 틀렸을까? 나는 그녀의 전기를 썼던 Linda Lear 교수와 "우리는 그녀에게 빚을 지고 있다.(We are all in her debt)"는 Tim Lambert 말에 동의하며, 'Rachel was right'라 말하고 싶다.
"Carson was never against the use of DDT," Lear said. "She was against the misuse of DD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