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내놈이 2박3일 수학여행을 떠난다고 아침 일찍부터 난리다.
집안을 정신없이 돌아다니다 출근 준비를 하는 나를 보고 한마디 툭 던지더니 자기 방으로 들어간다.
“아빠! 나 보고 싶어서 어떡해?”
멍청하게 막내놈 방문만 쳐다만 보고 있자 아내가 한소리 한다.
“애가 그러면 가서 따뜻하게 한 번 안아주지, 아빠가 멋이라고는…”
출근길에 엘리베이터 안에 있는 거울을 보고 옷 매무세를 가다듬는데 넥타이 멘 것이 마음에 안든다. 넥타이를 풀고 나와 집 앞 벤치에 가방을 놓고 다시 메려는데… 넥타이 메는 법이 갑자기 생각이 안난다. 이리 저리 해보아도 넥타이 메는 법을 순식간에 잊어 버렸다. 이게 무슨 징조인가?
고혈압에 대해 그동안 ‘혈압이 없는 것 보다 낫다‘하며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고 있었는데 결국 혈압약을 먹기로 했다.
120/80에서 3년전 140/90으로 작년에 150/100 요즘은 160/110까지 수치가 나오니 ‘이러다 한방에 훅 갈 수 있다’라는 생각을 떨쳐 버리기 힘들었다. 술담배 끊고 운동을 하여 체중을 빼던가 이런 범생 생활을 하기 힘들면 약을 먹던가 양자택일을 해야만 한다는 주위의 충고(?)에 후자를 선택키로 했다. 부모님 모두 혈압에 문제가 있어 가족력일 수 있다 하지만 결국은 다 내탓이로다.
준비해간 막걸리와 생수들이 슬러쉬로 변할 정도로 동장군의 기세가 등등한 가운데 영하 12도의 추운 날씨에 검단산에서 기원제를 올렸다. 발을 동동 구르며 의식을 치른 후 털레털레 내려 오는 길에 현충탑 부근에서 어림잡아 3m 이상 되는 짐을 지게에 싣고, 이 추운 날씨에 반바지 차림으로 올라오는 일꾼을 보았는데 놀라운 것은 건장한 남자가 아닌 여자라는 것이었다. 동료들의 입에서 이구동성으로 ‘헉!!’하고 외마디 탄성이 흘러 나왔다.
오르는 뒷 모습을 보았다. 반바지 차림이라 다리 근육이 눈에 들어 온다. 남성 못지 않는 힘이 느껴지는 다리다. 실내에서 닭고기 가슴살로 만든 다리가 아니고 산의 정기로 만든 다리다.
요즘 같은 추위엔 멋이고 뭐고 따뜻한게 우선이라 운동할 때만 사용하던 비니를 즐겨 쓴다. 그런데 불행하게도 이 비니를 쓴 내 모습이 우스꽝스러운지 아니면 뭔가 이상해 보이는지 아이들과 아내는 쓰지 말라고 적극 만류를 하는데 심지어 “여보! 절대 은행엔 들어가지 마세요”라고 당부를 한다.